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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대 독립 건축가들의 디자인 특성에 관한 연구 - 1980년대생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writings 2020. 6. 20. 08:01

     

     

    2019 대한건축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 

     

    2010년대 독립 건축가들의 디자인 특성에 관한 연구
    - 1980년대생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


    A Study on Design Characteristics of Independent Architects in 2010s
    - Focusing on Architects Born in 1980s -


    곽 승 찬* 김 현 섭**
    Kwak, Seung-Chan Kim, Hyon-Sob
    *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건축학박사
    (Corresponding author : Department of Architecture, Korea University, archistory@korea.ac.kr)
    Abstract
    The architectural trend in Korea is changing in 2010s. The fundamental cause is the advent of the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s. The belief that architecture could change the future is now structurally frustrated. The immediate impact goes to young architects, especially those who were born in 1980s. They have to react to this socio-economical change, and this reaction results in changes in their design methods, which are in turn producing new design characteristic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tudy these design characteristics and to map out the contemporary trends formed by the youngest generation of architects in Korea.
    키워드 : 2010년대 건축, 1980년대생 건축가, 기대감소의 시대, 디자인 특성
    Keywords : Architecture in 2010s, Architects born in 1980s, The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s, Design characteristic

     

     

    1. 서론 : 새로운 세대 호명하기

     

    1.1 연구의 배경 : 기대감소 시대와 건축의 새로운 세대

     

    2010년대에 들어 건축 직능이 변화하고 있다. 이유는 내외부적으로 다양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경제적 변곡점의 도래에 있다. 주지하듯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경제적 대침체(Great Recession)2010년대 초반에 끝을 맺었으나, Krugman(1990)이 예측한 기대감소 시대(The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s)는 전방위적이고 불가역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 변화란 저성장 수축사회로의 전환으로서, 공급과잉과 양극화로 인해 미래에 대한 전반적인 희망이 꺾인 낯선 세계가 시작되었다(홍성국, 2018). 건축을 포함한 모든 예술의 기본적 전제였던, 내일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지도 구조적으로 좌절되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워진 건축계의 현실은 각종 지표를 통해 드러난다. 연간실적이 한 건도 없는 건축사무소의 비율은 2007년까지 꾸준히 줄어들어 2%를 기록했으나, 2009년에는 다시 올라 25%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연간 10건 이상의 실적을 올리는 중대형사무소의 비중은 꾸준히 늘어났다. 또 건축사의 대가기준은 20년째 제자리인데, 5년제 인증 프로그램의 졸업자 수는 2010855명에서 20151,517명까지 증가했다. 대형사무소들은 매출과 관계없이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사회진출과 동시에 기대감소 시대로의 진입을 맞이한 1980년대생 독립 건축가들이다. 80년대생들은 20~29세에 2008년의 경제위기를 겪었고, 시대적 변화가 본격화한 시기에 건축교육을 받거나 사회에 진출했다. 따라서 그들이 2010년대에 들어 독립사무소를 개소했을 때, 업무방식(과정)과 디자인 특성(결과)에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반작용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업무방식에서의 반작용은 업무영역의 확장과 설계업무의 왜소화로 나타난다. 박세미(2018)에 따르면, 80년대생 건축가들은 공간을 직접 구축하는 일 바깥으로 스스로의 업무영역을 넓게 설정한다. 여기에는 공간 기획 및 브랜딩, 부동산 컨설팅, 공간운영, 전시, 출판, 연구, 각종 제품 디자인 등이 포함된다. , 공간을 설계하는 업무 자체도 왜소화되어, 신축 및 중대형 프로젝트의 비중이 작고 리모델링과 소형 주택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그룹으로 사무소를 운영하는 경우가 잦다. 이와 같은 특성들은 모두 전통적인 소형 아틀리에의 업무방식으로는 생존이 어려워진 현실에 대한 대응으로 파악할 수 있다.

     

    1.2 선행문헌 고찰 : 2010년대의 세대를 호명하려는 시도들

     

    80년대생 혹은 2010년대 독립 건축가들에 대한 선행연구는 아직 부실한 상황이다. 주로 30대 건축가에 주목한 것으로 보이는 격월간 와이드AR 20173-4월호는, 처음으로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을 묶어냈으며, 인터뷰와 대표작을 제시하는 일차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으나, “함께 일을 도모하며 상생한다는 업무방식에 관한 인상비평 외에는 별다른 통찰을 제공하지 않는다. 전술한 박세미의 기사(월간 SPACE 201811월호), ‘1980년대생 건축가로 그들을 호명했고, 업무방식의 특징을 제시하는 성과가 있었으나, 작업과 디자인의 특성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 두 기사 모두 대략적인 나이 기준(3~40/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생)에 따라 건축가들을 선별했다는 문제점이 있으며, 와이드AR이 제시한 10팀의 건축가 중 6(경계없는작업실, designband YOAP, 푸하하하프렌즈, JYA-rchitects, mmk+, Z_Lab)은 다시 SPACE의 목록에 포함되어 상당부분 겹치는 제한점도 있었다.

     

    SPACE가 처음으로 새로운 세대에 이름을 붙인 2018년에, 정림건축문화재단 또한 포럼시리즈 두 번째 탐색을 통해 10팀의 신예건축가를 선정하여 세대를 발견하려는 나름의 움직임을 보였다. 여기에는 새로운 80년대 건축가들이 포함되는 등 성과가 있었으나, 단순 목록을 뛰어넘는 학술적 사료를 남기지는 못했으며, 선정기준은 더더욱 불명확했다.

     

    마지막으로, 역시 학술연구결과는 아니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젊은건축가상 또한 준거점이 될 수 있다. 공교롭게도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에 제정되었으므로, 상의 목록 자체가 기대감소 시대에 대처해온 한국건축의 궤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45세 이하라는 나이 기준에 따라, 초기에는 60년대 말~70년대 초 태생의 건축가들이 주로 수상했으나, 2010년대 들어서며 JYA-rchitects(2013)을 필두로 80년대생 건축가를 포함한 팀들이 다수 수상했다. 그러나 2017년에는 3팀 총 4명 중 1명만이 80년대생에 해당되었고, 2018년에도 3팀 중 1팀은 70년대생 건축가에 해당되어 여전히 80년대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1.3 연구의 대상 : 80년대생 건축가 세대의 목록

     

    이와 같은 상황인식 속에서, 본 논문은 전술한 SPACE, 와이드AR, 정림건축문화재단, 젊은건축가상의 리스트를 모두 종합하여 각 리스트의 약점을 보완한다. 그 뒤, 2010년대에 개소한 독립 건축사무소 중, 20193월을 기준으로 대표 중 절반이상이 80년대생인 팀만을 다시 추려낸다. 이는 기대감소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2010년대의 사회경제적 특성이 빚어낸 새로운 세대를 면밀히 확인하고 호명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로 추려진 21팀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김이홍, OBBA, Archihood WxY, stpmj, IDÉEAA, Formative architects, O'BRICK, 이와임, JYA-rchitects, a.co.lab, 황 건축스튜디오, Z_Lab, AEA, 경계없는작업실, o.heje, ETAA, fig.architects, 푸하하하프렌즈, ODETO.A, BLANK, B.U.S Architecture.

     

    1.4 연구의 목적 : 디자인특성의 파악

     

    앞서 언급했듯, 기대감소시대로의 전환은 업무방식과 디자인 특성 모두에서 80년대생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리라 판단된다. 박세미의 선행문헌이 업무방식에 집중했다면, 이 연구는 21개 팀의 프로젝트 리스트를 정성적으로 살펴보고, 작품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세대의 디자인 특성을 추출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특성에 관한 탐색적 통찰의 결과들은, 21개 팀의 작품들 중 가장 적합한 예시로 뒷받침될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경제적인 전환이 단순히 직능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디자인의 방식과 작업의 결과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본 연구는 한국건축에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정체를 밝혀 우리 건축사의 연장선상에 위치시키는 데에 일조하고자 한다.

     

     

    2. 사회경제적 한계 뒤 한 줌의 자율성에 대한 집착

     

    2.1 시공적 디테일에 대한 집착

     

    201612월부터 20171월까지 원앤제이갤러리에서는 젊은 추상화가들의 단체전이 열렸다. 제목 ‘RULES', 기획자에 따르면 참여 작가 모두가 자신이 온전히 통치(rules)’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규칙(rules)을 고수해 나가고 있다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즉 일반적인 규칙이 사회구성원이 사이에서 통용되기 위해 만들어진다면, 젊은 화가들의 규칙, 본인이 만들어낸 화폭 안의 세계에서만 지켜진다. 그것들은 사회적인 규칙과 다름없이 자못 객관적이고 명확해 보이지만, 그 가치는 본인이 만들고 플레이하는 가상의 게임을 작동시키는 데 있을 뿐이다(최정윤, 2016). 그 결과 그들의 작업에서는 사회경제적 메시지를 찾을 수 없고, 작품은 바깥세계와 단절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기획자는 그 사회적인 이유 또한 유추한다. 현실의 삶을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작은 유토피아를 만들고 그 곳에서 온전한 창작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이다(최정윤, 2017).

     

    동시대 건축가들의 디자인에서 나타나는 특성도 이와 다르지 않다. 80년대생 건축가들은 건축을 배움과 동시에 기대감소 시대를 겪고 내면화했으므로, 건축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는 사회경제적 한계에 감정적 반응을 표출하는 디자인을 시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정치, 사회, 경제의 문제를 분리시키고, 스스로가 목표를 설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폐쇄적인 게임의 규칙을 창조한다. 그들이 계속 응용하며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두 가지 규칙은 바로 시공 디테일과 표면적 재료성이다.

     

    이는 언뜻 이전 세대의 디자인 방식과 유사한 듯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을 가진다. 물론 이전 세대의 좋은 건축가들도 시공 상의 디테일을 잘 컨트롤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고, 80년대생 건축가들에게도 그 점을 본받는 것은 기본적인 입장이다. 실제로 Archihood WxY의 강우현과 강영진은 생존전략을 묻는 SPACE의 질문에 조병수건축연구소에서 배운 대로 작은 프로젝트이더라도 현장감리를 열심히 보는 것이라는 과거지향적인 대답을 내놓는다(박세미, 2018). 그러나 이들 세대에게 시공 디테일에 대한 관심은 종종 오락적인 집착의 형태로 발전하곤 한다. 푸하하하프렌즈의 성수연방 리모델링(2018)’을 보자. 그들은 성수연방이 본디 70년대에 지어진 공장이기 때문에, “50년생 아버지에게 ABBA를 들려드리는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Beegees를 들려드리는 마음으로, 70년대 태어난 건물에게 70년대 건물의 조형을 입혀주기로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H빔으로 처리해도 될 외부 발코니의 기둥을 굳이 콘크리트 거푸집으로 처리한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이는 불합리하며 비효율적인 전략이다. 성수연방의 기존 벽체에는 H빔 형태의 콘크리트 기둥이 돌출된 부분이 없으며, 사진과 평면을 살펴봐도 반드시 H빔 형태의 콘크리트 기둥만이 본래와 조화로웠을 것이라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 거꾸로 그것이 기존 건물과 시각적으로 차별화되는 효과를 낳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즉 구조적으로 아무 효과가 없을뿐더러, 심미적인 고려만 했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푸하하하프렌즈는 과거 한국건물의 조형성을 가지고 농담을 한다는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그것을 최선을 다해 실천한다. H빔 형태의 콘크리트와 발코니가 만나는 부분의 조형성을 대단히 세밀하게 결정해놓은 브릿지 상세도에서 그 노력의 흔적이 잘 드러난다. 프로젝트의 원리 안에서만 말이 되는 규칙을 설정해놓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2.2 표면적 재료성에 대한 집착

     

    더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표면적 재료성에 대한 집착이다. 재료성 역시 기성 건축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이것 또한 시공 디테일에 대한 집착과 마찬가지로 극단화함으로써 게임이 된다. 과거 건축의 재료성은 몸의 현상학적 경험과 맞닿아 있거나, 구축성과 연관지어 재료의 정직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식으로 다뤄지곤 했다. 그러나 80년대생 건축가들은 그와 같은 담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건축 개념상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미적이거나 실험적인 이유로 재료의 선택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 이는 철저히 표면상의 문제로 남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와임의 메밀꽃 필 무렵(2018)’을 보자. 시멘트와 화강암, 미송판재가 만나는 1층의 단면은 대단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이와임은 화강암과 시멘트의 선택에 대해 주변 동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재료들을 새롭게 사용할 방법을 모색한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골목길 안쪽에서 보이는 시멘트를 1층에 갖고 왔으며, 큰길가에 흔히 보이는 화강암을 2층에 갖고 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논리 자체는 작동한다. 그러나 그건 조작적인 알리바이일 뿐, ‘꼭 그 재료여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실제로, 메밀꽃 필 무렵 건물 양쪽은 각각 백색, 붉은색 벽돌 건물이 자리해 있다. 화강암과 시멘트를 사용한 건물은 물론 같은 블록 내에 존재하지만, 그게 그 자리에 반드시 그 재료가 쓰여야 한다는 필연적인 이유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설령 양쪽 건물이 화강암, 시멘트였다고 하더라도, 메밀꽃 필 무렵의 화강암과 시멘트는 보편적인 그것들과는 다르게 느껴지도록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다듬어져 있다. 화강암 판재는 세장하게 절단된 뒤, 모서리 부분의 처리까지 고려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1층의 시멘트 표면은 종석의 크기와 색상, 미장 씻어내는 방식의 차별화로 인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 재료처럼 느껴진다.

     

    결국, 이 건물의 시멘트와 화강암은 적당한 이유로 한 번 선택된 뒤로는, 그게 규칙이라고 건축가들에 의해 스스로 믿어지고, 결국엔 표면을 어떻게 아름답고 창의적으로 가다듬을지를 밀어붙여보는 게임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와임이 완벽하게 재료의 표면성 게임에만 집중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대표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SPACE 20193월호에 실린 노경작가의 사진 속 메밀꽃 필 무렵은 밤하늘, 2층 화강암, 1층 시멘트, 미송판 틀이 평면추상처럼 보이도록 크롭되어 있다. 그리고 그 조각보들의 위에는 건너편 가로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화강암과 시멘트의 잘 다듬어진 농담과 나무의 그림자는 조화를 이루어 사진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이게 만든다. 미송판재의 색감은 이 구상에 훌륭한 포인트가 된다. 이래도 화강암과 시멘트가 정말로 동네의 맥락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어서 쓰였다고 보아야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건축으로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없고, 메시지가 통하지도 않는 시대상황 속에서, 건축가들은 손에 남은 몇 가지 레버들을 놀이처럼 돌려볼 방법을 찾는 것뿐이다. 이와 같이 개념이나 구축에서 출발하지 않는 표면적 재료성 그 자체에 대한 집착은 stpmj‘Stratum House(2017)’‘The Masonry(2017)' 등에서도 나타난다.

     

    3. 사회경제적 한계에 반항하지 않는 작은 장난들

     

    3.1 음전한 기하학적 조형성의 추구

     

    기성 건축이 갖고 있던 몇 가지 원리를 가지고 자기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시공적 디테일과 표면적 재료성에 대한 집착이었다면,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놀이도 존재한다. , 그 놀이는 어디까지나 작은 놀이이고 장난일 뿐, 건축으로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은 아니다. 그 첫 번째는 음전한 기하학적 조형성의 추구다.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은 건축가의 의지로 사회적 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과, 클라이언트 요구사항 충족 및 쾌적함 제공을 라인으로 설정하고, 그 라인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기하학적인 장난들을 구사한다. 이 조형성은 주로 기본도형에 가까운 단순한 형태가 깔끔하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추구된다.

     

    먼저 김이홍의 ‘57E130 NY Condominium(2018)’을 보자. 이 작품을 양 옆의 건물과 비교해보면, 음전한 기하학적 조형성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 쉽다. 건축가가 직접 설명하듯 이 건물의 세로로 긴 창은 동네의 파사드와 창문 배열의 그리드를 존중(Respecting the facade/window arrangement in a grid manner of the neighborhood)”한 결과다. 정확히 말하면, 이 건물의 전체적 형태와 개구부 배열은 동네의 파사드를 기하적으로 단순화한 결과인데, 여기서 필라스터에 45도로 깎인 모서리가 불규칙하게 추가됨으로써, 절대적 기하성을 유지하는 음전한 장난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즉 건물 전체의 조형은 주변환경과 물리적으로 발맞춰 가는 엄격함을 지키면서, 눈에 거슬리지도 않으며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편도 아닌 정 45도의 모서리를 삽입한 것이다. 이 작품이 주변과 함께 서 있을 때 드러나는 기하학적 조형성은, 푸하하하프렌즈의 ㅁㅁㄷ 작은집(2016)’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AEA‘G1931-6(2018)’상가주택도 어떻게 엄정하고 동시에 음전한 기하학적 원리들이 건축가의 장난으로 활용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입면 2층부에 깨끗하게 드러나는 맞배지붕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도형을 그리듯 의도적으로 선택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1층 열린 곳을 완벽한 호를 그리며 돌아 들어가는 벽체도 마찬가지다. 꼭 그래야 하는 공간적, 개념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깔끔하고 차분한 기하학적 조형성을 가지고 아무런 한계에도 부딪히지 않는 안전한 건축적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건물 내부의 채광창이 파사드의 맞배모양과 똑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는 지점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결국 음전한 기하학적 조형은 건축주의 편의성과는 별로 상관이 없고, 아무런 메시지도 던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한 허용된 장난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같은 세대의 서로 다른 건축가들에게서 비슷한 유형의 딱 떨어지는 기하학적 조형성을 발견할 수 있어 혐의는 짙어진다. ‘집모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맞배지붕 오각형의 단순한 조형성은 AEA 뿐 아니라 a.co.lab의 목동현대아파트 골목끝책방(2018), B.U.S Architecture의 제주김녕 고고익선(2018), IDÉEAA의 꿈자람지역아동센터(2018), stpmjShear House(2016) 에서도 나타난다. , 푸하하하프렌즈가 즐겨 사용하는 반원아치는, 그들의 ‘Pipe Ground(2018)’에도 있고, ‘상남자의 집(2019)’서랍에도 있지만, 황 건축사사무소의 ‘C2 Office(2017)’ 계획안,‘P Museum(2016)' 계획안에도 등장하고, ODETO.Aㅇㅁㅈㅁ(2017)’컨셉 드로잉에도 있으며, stpmjFive-Story House(2018), B.U.S Architecture쌍문동 쓸모의 발견(2018)’에도 있다 . 언제부터 반원이 그렇게 한국의 현대건축에 그리도 자주 쓰이는 형태였는가? 이전 세대에도 이런 절대주의적 기하조형이 등장했던가?

     

    이 디자인 특성은 사실 80년대생 건축가들에게만 등장하기보다는 2010년대 독립건축가들이 전반적으로 사용하기 즐기는 장난으로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특히, 70년대생 중에서도 80년대생과 비슷한 시기에 독립해서 비슷한 시기에 조형원리를 형성한 건축가들에게서는 이 특성이 자주 등장한다. 2011년에 개소한 MinWorkshop, 2013년에 개소한 Designband YOAP이나 aoa architects, 2016년에 개소한 Tectonics Lab 등이 좋은 예시가 된다.

     

    3.2 과거 스타일의 무작위적 소환

     

    새로운 세대가 구사하는 두 번째 장난은 과거 스타일의 무작위적 소환이다. 기대감소 시대의 도래가 미래에 대한 추동을 소거하고 세계가 납작해지며, 과거의 양식적인 껍질이 맥락적인 고려 없이 무작위로 부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Z_Lab누와(2019)’는 어떤 부분은 완벽한 한옥이고, 또 다른 부분은 료칸(旅館)같다. 이 때 두 양식은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않고, 시간과 공간의 맥락을 무시하고 공존한다. 또 한편 그들의 ‘CASA CAMINO(2017)’에는 일본 젠 스타일과 스페인 건축양식이 물리적으로 동시에 존재하고,‘눈먼고래(2014)’는 불현듯 제주도의 토속주거의 세련된 레플리카를 제시한다. 한편, BLANK가 직접 운영하는 공집합(2018)’20세기 초 미국의 조각들과, 킨포크의 한 페이지, 한국의 골목에서 발견되는 장면들이 동시에 붙어있다. , 푸하하하프렌즈의 성수연방으로도 돌아가보자. 그들이 시공적 디테일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면서, 그 껍데기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옛날 한국 건물을 뉴 레트로로 되살린 결과물이었다. 60년대인지, 70년대인지 보다는 그 근과거의 껍질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대감소 시대가 이를 어색하지 않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과거 스타일의 무작위적 소환은, 스스로를건축가로만 정체화하는 팀에서는 앞서의 세 가지 디자인 특성에 비해 현격하게 적게 나타났다. 과거 양식의 소환은 업무영역의 확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공간기획 및 브랜딩, 토털 디렉팅의 주요한 방법론으로써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Z_Lab이나 BLANK와 같이 공간기획 및 운영을 주 업역 중 하나로 삼는 팀이 이 장난을 자주 구사하는 것이다. 이는 푸하하하프렌즈가 어떻게 건축적인 태도와 공간기획적인 태도의 중간에 서 있는지, 왜 푸하하하의 건물이 왜 상당한 집객량을 달성하는지도 설명한다. 과거의 납작한 껍데기 뿐일지라도, 인스타그램의 정방형 화면에 실릴 수 있는 한 조각의 장면이 있는지, 그게 공간경영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조건으로 기능하고 있다.

     

    4. 결론 및 제언

     

    앞서 언급했듯, 2010년대의 독립건축가들은 업무방식 상으로는 영역을 다변화하고, 건축설계 작업을 왜소화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대전환에 직접적으로 대응한다. 그런데, 그들의 작업물을 들여다보면 그 디자인 특성에도 기대감소 시대에 대한 반작용이 강력하게 투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양상은 구조적 한계로 건축의 사회적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뒤, 건축에 남은 작은 자율성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첫 번째 흐름과, 사회경제적 한계에 저항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사되는 스타일상의 장난, 두 갈래로 분류될 수 있다.

     

    본 연구는 주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만 다뤄지던 한국 건축의 새로운 세대를 처음으로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나아가서 디자인 특성을 포착했다는 의의가 있다. 다만, 젊은 세대의 건축가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여전히 본인들의 건축세계를 발전시켜나가는 중인만큼, 디자인 특성에 대한 분석도 계속해서 수정,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박세미, 1980년대생 건축가그룹이 나타나다, SPACE 201811월호, 2018

    2. 이중용, 와이드AR 20173-4월호, 2017
    저자로 표기된 본인께서 연락을 주셔서, 이 기획에 실제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수정을 요청해주셨습니다(2017년 3-4월호는 개별 글의 저자가 따로 없이 볼륨 전체가 하나의 기획으로 출시되었고, 해당 호의 "편집장"을 문헌저자로 표기하였습니다). 해당 간행물에 질의한 결과 별도의 저자 없이 표기하는 것이 맞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를 파일 교체 등의 형태로 반영해 줄 수 있는지의 여부를 대한건축학회 측에 2차례 질의하였으나 답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3. 최정윤, RULES 기획의 글, 2016

    4. 최정윤, curator's voice_RULES, 2017

    5. 홍성국, 수축사회, 2018

    6. Krugman, P. (1990).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s: U.S. Economic Policy in the 19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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