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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장의 글 :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으로서.
    writings 2021. 1. 26. 23:54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으로서.

    건축매거진 잡담 2019년 봄호 : "건축과 로맨스"


    공공건축 공모의 추문을 파헤쳤던 이전 호의 글을, 나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건축에 대한 낡고 흔한 농담들은, 우리가 얼마나 힘들고 또 힘들어질지를 이야기한다. 밤샘과 크리틱에 관한 가벼운 욕지거리들, 탈설(계)와 기대소득에 관한 자조적 한탄들. 농담은 언제나 진실의 흔적이다. 견딜 수 없는 진실이 틈을 만들 때 농담은 삐져나온다.”

    계절이 지나가고 햇살은 오늘이 더 쨍하고, 농담은 죽지 않아 설계실을 맴돌고 있습니다.

    창간 후 두 번째 봄입니다. 첫 번째 봄에 우리는 “춘화(春畵)”를 제호로 내걸었습니다. 빨갛고, 야하고, 때로 폭력적인 건축 이야기를 했습니다. 발칙해야 했고 충격을 주어야 했습니다. 도발적인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믿어서는 아닙니다. 성문화된 정사와 통용되는 정론만을 답습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야기들을 품어보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말을 꺼내야 한다면 우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먹고 살기 위한 건축에서 조금이나마 빗겨난 마지막 유예의 순간을 온전히 누리려는, 비평적인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한 해가 지났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비틀었을까요. 아니 우리가 쿡쿡 찌른다고 건축이 몇  번이라도 움찔대긴 했나요. 그렇게 생각진 않습니다. 물론 건축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몇 번의 판을 깔았습니다(“소나기”, “향수”, “겨울잠”). 그러나 입 속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때로 흉중에서 벼려지지 못해, 실린 글들은 방언의 받아쓰기에 그치곤 했습니다. 또 물론 지면의 바깥에서 우리의 담론을 형성하려는 작은 노력들도 기울였습니다(“잡담회”, “무비나잇”). 그러나 몇 번의 만남과 몇 시간의 대화만으로 세대를 호명하고 시각을 가시화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로 맞는 봄에, 우리는 모든 것의 초심을 생각합니다. 견딜 수 없는 현실의 틈에서 발칙한 농담을 캐내기 전에, 그 조각난 길에 들어섰던 이유를 기억하나요? 건축은 대관절 무엇이길래 우리는 쓴 웃음 속에서도 그것을 붙잡나요? 농담을 던졌던 우리는 걸터 앉아 처음의 마음들을 생각합니다, 계속 걸을 용기가 생길지 모른다는 기대에. 나는 정성일의 글을 떠올립니다.

    “그 영화를 사랑하는 건 그 영화가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화를 사랑하는 건 세상을 사랑하는 그 방법이다. (...) 말하자면 영화를 사랑하고 또 하면서도 갈증에 시달리는 것은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만족할만한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결코 만족해서는 안 되는 사랑이다.”

    나는 이 글의 ‘영화’를 모두 ‘예술’이나 ‘건축’으로 바꾸어 다시 읽습니다. 그 건축을 사랑하는 건 그 건축이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건축을 사랑하는 건 세상을 사랑하는 그 방법이다. 그래, 우리는 모든 것 이전에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술이나 영화나 건축 같은 것에 우리를 바치는 것입니다. 기울고 깨진 이 길을 계속 걸어가는 건, 이것이 우리가 택한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맨스”여야 했습니다. 미운 이유도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힘든 이유도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임을. 건축이 로맨스와 맞닿을 수 있으며, 로맨틱한 건축이 있을 수 있음을. 건축과 우리의 로맨스가, 아직은,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두 번째 봄입니다. 

    2019년 5월, 프로잡담러 K 곽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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