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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에서의 컨템포러나이어티에 관한 고찰 (A Study on the Contemporaneity of Architecture)
    writings 2021. 12. 4. 00:53

     

     

    *2021 한국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건축에서의 컨템포러나이어티에 관한 고찰
    A Study on the Contemporaneity of Architecture

    곽 승 찬 Kwak, Seung-Chan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석사과정)
    김 현 섭* Kim, Hyon-Sob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주제어 : 컨템포러나이어티, 컨템포러리, 건축전시
    Keywords : Contemporaneity, Contemporary, Architectural Exhibition

     

     

     

    1. 서 론

     

    본 연구는 건축과 컨템포러나이어티(contemporaneity)의 관계를 재고하고, 건축에서 그것이 나타나는 양상을 건축전시에서 발견한다. 컨템포러나이어티는 모던(modern) 이후의 시간을 컨템포러리(contemporary)로 이해할 때 그 시대적 속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모던(modern)과 모더니티(modernity)가 변화한 시공을 온전히 포착할 수 없다는 인식의 확산 속에서, 컨템포러나이어티는 특히 1990년대부터 포스트모더니티(postmodernity)를 대신해 근과거부터 오늘날까지를 포괄하는 용어로 시각예술 담론에서 활발히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건축에서는 다종다양한 포스트모던의 이론적, 실무적 실천들이 2000년대에 들어 소강기를 맞은 이후 새로운 시대를 큰 틀에서 포착하려는 이론적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1) 이에 본고는 건축과 컨템포러나이어티의 관계를 파악하고, 컨템포러나이어티의 속성을 건축으로 옮겨온 뒤, 전시와 큐레이토리얼(curatorial)의 장()을 통해 그 속성이 건축에서도 발현되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2. 컨템포러리와 컨템포러나이어티

     

    2-1. 개념적 지형의 파악

     

    컨템포러리가 새로운 모던이 되었다(the contemporary has become the new modern).” 테리 스미스(T. Smith, 2006)는 모더니즘이 1970년대에 쇠락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위기의 신호로서 등장함과 동시에, ‘컨템포러리가 예술의 제도적 명칭들을 장악하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단언한다. 제도적 명칭에는 갤러리, 미술관, 대학수업, 이론서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한편 클레어 비숍(C. Bishop, 2014)모던의 대체어로 컨템포러리 예술(contemporary art)’을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 것이 전후 시기에 설립된 기관들이었다고 지적한다. 그가 드는 대표적인 사례는 1948년 보스턴 현대미술관(Institute of Modern Art)이 뉴욕 MoMA(Museum of Modern Art)의 국제주의와 스스로를 구별 짓기 위해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로 명칭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두 명의 논자가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컨템포러리의 등장으로 모던이 칭하는 시기는 비교적 더 과거의 시점, 현대보다 근대로 밀려났다. 자연히, 근래에는 컨템포러리를 현재적인 의미를 담은 동시대당대로 옮기는 일이 잦다.

     

    컨템포러리의 모던 밀어내기는 건축에서도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일례로 2019년 주헝가리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전시 한국 현대건축, 세계인의 눈, 1989-2019의 영문(英文) 원제는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Cosmopolitan Look 1989-2019였다. 이 전시는 유럽 순회전 Megacity Network: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2007-2009) 이후 오랜만의 해외 한국 현대건축전이었는데, 그때의 “Contemporary”도 국립현대미술관 귀국전(2009-2010)에서 이미 현대로 번역된 바 있었다. 두 전시는 흔치 않은 비한국어권에서의 기획전이었던만큼, 영문 전시명이 형식적인 수준 이상으로 고려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 둘 모두 (연령대의 폭에서 차이는 있지만) 현재진행형의 건축가들을 내세우고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건축에서의 컨템포러리 역시 가까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동시대적 현대를 뜻하는 표현으로 유통되고 있음을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김기수(2017)가 논하듯 이르게는 1945년이나 1960년대 이후, 근래에 부각되기로는 1989년 등, 모던과 컨템포러리의 구체적인 분기점에 관해서는 견해의 차이가 상존한다. 그러나 최소한 컨템포러리는 (다소간의 중첩은 있더라도) 모던보다 뒤에 오는 시간에 붙이는 수식어로 통용되고 있으며, 건축에서도 이 점은 동일해 보인다.2) 그런데 모던의 시대정신, 즉 모더니티(modernity)가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가 건축계에서도 충분히 공유됐던 것과 달리, 컨템포러리의 시대정신, 컨템포러나이어티와 건축이 맺는 관계는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 힐데 하이넨은 Architecture and Modernity(1999)를 통해 1920년대 당시 건축계가 동시대의 철학과 사회학의 논의와는 괴리된 지점이 있었더라도 자체적으로 모더니티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개념적 시도를 벌였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를 염두에 두면, 컨템포러나이어티에 관한 오늘의 담론적 공백은 더욱 특이한 일이다.

     

    2-2. 담론적 공백의 배경

     

    이러한 담론적 공백에는 두 가지 이유를 추측해봄직하다. 첫째로는 소위 탈비판(post-criticality) 논쟁 이후 (본의 아니게) 찾아온 건축의 담론적 기반의 약화다. 조순익(2014)3)과 이경창(2013)이 지적하듯, 로버트 소몰과 사라 화이팅(R. Somol, S. Whiting, 2002), 마이클 스픽스(M. Speaks, 2002, 2005) 등에 의해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탈비판 논쟁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정점을 찍었던 자율적(autonomous) 건축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공격했던 대상은 피터 아이젠만과 마이클 헤이스 등의 비판적 건축이었는데, 그 현학성이 새로운 시대의 실재(the real)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골자였다. 특히 소몰과 화이팅은 비판적(critical)인 것에서 프로젝트적(projective인 것으로, 지표(index)에서 다이어그램(diagram)으로, 변증법(dialectics)에서 도플러효과(doppler), (hot)에서 쿨(cool)으로라는 네 가지 변동을 통해 비판적 건축으로부터 보다 실무적인 프로젝트적 건축으로의 이행을 주장했다. 그들은 이러한 이행을 통해 실무가 이론 및 비평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스픽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론이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건축의 혁신과 문화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견지에까지 도달하기도 했다.

     

    물론 탈비판 논자들, 특히 소몰과 화이팅은 이경창(2013)의 평가처럼 시장의 힘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가 아닌 이에 대한 긍정과 참여의 가능성을 만들었으며, “디지털 건축의 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을 넘어서며 프로젝트적/다이어그램적 실무, 혹은 OMA/AMO의 후예인 한 건축들은 이론과 비평을 대체하기보다는 이질적 형태만이 맥락에서 탈각한 이미지로 브랜드화하는 양태를 띠기 시작했다. ‘이론에 대한 다소간의 단순화를 통해서라도, 탈비판이라는 강력한 의제를 통해 시대의 실재를 반영하는 실무를 이끌어내려던 논자들의 의도가, 단순히 자본과 권력에 의해 이론과 비평이 밀려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건축의 바깥에서 컨템포러나이어티에 관한 본격적인 갑론을박이 시작됐던 2000년대 당시, 건축은 실무에 찍힌 강력한 방점으로 인해 스타건축가들이 주도하는 초대형 실무의 스펙터클을 쫓아가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비판적 건축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적 절정이자 막다른 길에 이른 뒤, 컨템포러나이어티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할 시기에 실무적 건축이 승기를 잡았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과 관련한 건축에 특유한 사정이 있다. 브라이언 맥헤일(B. McHale, 2016)은 문화예술의 다종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을 사후적으로 망라하며, 모든 문화적 표현의 형식 중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가 가장 설득력있게 사용됐던 영역이 건축이라고 주장했다. 건축 포스트모더니즘은, 다른 모든 포스트모던 문화 현상들의 참조점이 되는 특권적 모델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잘 알려졌듯, 찰스 젠크스의 The Language of Post-Modern Architecture(1977)는 포스트모던 건축이 실무의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구현되기도 이전에 이미 방법론과 효과를 제시해냈다. 그 선구적인 기호학적 이중구조의 논리는 이내 건축뿐 아니라 인접분야에도 영향을 끼치는 수순을 따랐다. 맥헤일이 성기 포스트모더니즘의 남상점을 건축적 패러다임로 이름 붙이고 한 꼭지를 할애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1970년대에도 이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자리를 굳힌 정도로 따지자면 건축에 비할 영역을 찾기 어려웠다. 이러한 흐름을 이어가 건축 포스트모더니즘은 조형적 역사주의에 이어 비판적 지역주의, 하이테크 건축, 해체주의까지를 모두 포괄해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폭넓은 역사적 개념어로 자리 잡게 됐다.

     

    그런데 김기수(2017), 임근준(2017)이 설명했듯 컨템포러나이어티는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티(postmodernity)’와의 개념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유포되기 시작한 표현이었다. 포스트모더니티를 시대정신의 표현으로 쓸 수 없다는 측의 주요 논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서양과 서양미술계의 특수한 양식이고 징후일 뿐이므로, 더 중립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건축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표현이 유희적 역사주의를 통한 모더니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넘어서는 개념적 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건축에서는 포스트모더니티를 대체하는 컨템포러나이어티와, 그 관련논의의 필요성이 시급하게 와닿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2-3. 컨템포러나이어티의 속성들

     

    담론적 공백을 깨고, 건축에서 컨템포러나이어티가 드러나는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건축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러한 역할을 했듯) 인접분야를 참조해 기준점을 세울 필요가 있다. 비숍(2014)은 컨템포러나이어티의 시간성에 집중해 관련된 담론들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컨템포러나이어티가 정체(stasis)를 의미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컨템포러나이어티를 연장된, 잠재적으로 영구적일 수 있는 지연의 시기로 보며, 영광스러운 미래의 이름으로 현재를 초월하려던 모더니즘과 구분하려 한 보리스 그로이스가 여기에 속한다. 이 부류는 과거의 미래지향적인 모더니즘이 정체된 현재로 대체됐다고 주장한다. 둘째는 컨템포러나이어티를 시간적 이접(temporal disjunction)의 문제로 보는 입장이다. 앞서 언급한 스미스는 컨템포러리가 이율배반성과 비동시성을 드러낸다고 이야기한다. 조르지오 아감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시간적 파열(temporal rupture)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비숍은 다원적이고 이접적인 시간성들을 이야기하는 두 번째 부류를 보다 생성적인 것으로 본다. 이는 미래와 과거가 한데 엮여 충돌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성(historicity)과도 구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비숍이 강조하는 시간적 이접의 연장선상에서, 컨템포러나이어티는 공간적 이접을 의미하기도 한다. 팀 그리핀(T. Griffin, 2013)이 재인용한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 에두아르 글리상의 때이른 통찰이 이를 잘 드러낸다: “우리가 세계화라고 부르는 것은내가 세계성(globality)’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실재의 부정적 측면이라 생각한다. 세계성은 역사상 처음으로, 실질적이고 즉각적이며 충격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다수인 동시에 하나로, 또한 불가분한 존재로 인식하는 이 세계에서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전례 없는 모험이다.” 그리핀에 따르면, “다수인 동시에 하나라는 개념은 타인의 불투명성을 직시하면서 그 유동성 안에서 저항함을 뜻한다. “세계가 어느 때보다 서로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각 문화 사이의 차이가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한편 정연심(2012)은 현대미술에 집중해 컨템포러나이어티라는 동시대적 조건하에 나타나는 포스트-미디엄(post-medium)과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 등의 속성들을 정리한다. 그가 보기에 컨템포러나이어티의 그러한 속성들은 공통적인 관심사를 표명하는데, 첫째로는 인터넷과 디지털의 발달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 둘째로는 이미지 생산과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이는 결국 큰 틀에서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대한 인식을 다룬다는 것으로 묶일 수 있다. 한편 정연심은 컨템포러나이어티 자체의 정의를 규명하며 낸시 콘디의 복수형의 모더니즘(multiple modernisms)”이라는 표현을 차용한다. 서구 중심의 모더니티와 유사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세계의 모더니티들이 공존하게 된 것을 컨템포러나이어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가 중요하게 인용하는 것은 보리스 그로이스의 이미지에 관한 다음과 같은 언급이다. “동시대 문화적 맥락에서 이미지는 하나의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영구히 순환한다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상황과 매체에 따라 프로그램의 언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스크린의 프레임, 설치공간의 장소 등이 각기 다를 수 있다.” 또 같은 맥락에서 언급되는 레브 마노비치는 컨템포러나이어티의 정보-미학(Info-Aesthetics)을 주창하며 스크린 상에서 데이터로 이루어진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리믹스하는 행위를 강조한다. 즉 컨템포러리한 세계에서 이미지는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흐려진 채 데이터의 형태로 서로다른 매체를 계속해서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다.

     

     

    3. 건축전시를 통한 컨템포러나이어티의 발견

     

    정리하자면, 미래지향적인 추동의 완전한 거세, 시간성 및 근대성의 이접적인 공존, 세계성과 지역성의 모순적인 공존,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매체를 넘나드는 이미지의 영구적 순환을 컨템포러나이어티의 특징으로 지목할 수 있다. 컨템포러리한 사회 속에 놓인 건축 역시 그러한 컨템포러나이어티의 속성들을 어떤 식으로든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건축의 영역은 지어진 건축물이나 건축가의 이념이 아닌, 건축전시로 보인다.

     

    이는 건축전시가 드러내고 있는 동시대적인 역량에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최춘웅(2019)은 건축전시를 다룬 근래의 글에서 건축의 역사가 건물을 병렬한 결과가 아닌 건물에 담긴 사상의 역사임을 지적하며, “한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은 지극히 다원적이고 복잡한 조건들을 충족하며 이루어진다. 전시가 주는 자유는 바로 이 외부적 조건과의 분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전시에서는) 건축적 아이디어가 더욱 정제되어 전달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전시, ‘디자인 실무역사 및 이론사이의 단순 연결 고리가 아닌,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건축적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더 컨템포러리한 맥락에서 배형민은 공개강연에서의 발언을 통해 이제는 건축비평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 자체가 근대적인 질문이라 말하며, 본인은 모더니즘이 가졌던 각 영역의 독자성이 무의미해진 오늘, 건축비평이 갖고 있던 영역구분들을 큐레이팅을 통해 헤쳐나가는 실천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4) 종합하자면 건축전시, 혹은 건축의 큐레이토리얼 실천은 건축의 실무는 물론이요 역사, 이론 및 비평이라는 분야와도 별개로 작동하며 힘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특히 컨템포러리의 유동적이고 일시적인 상황 속에서는 모더니즘의 전통적인 분과인 학문영역보다 큐레이토리얼의 영역에서 유통되는 건축의 정보와 지식들이 시대정신을 더 잘 반영할 공산이 크다.

     

    가깝게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시대 건축전시의 사건들이 이를 방증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에 개관했으나 2011년 들어 첫 건축 전문 큐레이터를 선임하고 규모 있는 건축 전시를 이어 나가고 있다. 해당 큐레이터가 공공연히 언급하듯 건축전시는 늘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체전시 중 모객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흐름을 타고 2019년에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개관했고, 2025년에는 세종시에 국립도시건축박물관이 신축, 개관할 예정이다. 더 중요하게는 비엔날레가 있다. 1989년 이후의 컨템포러리 예술에 관한 이론서를 책임편집한 알렉산더 덤베이즈와 수잰 허드슨(A. Dumbadze, S. Hudson)은 책을 열며 이 컨템포러리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를 꼽은 바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행사들이 증가해왔는데, “베니스와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제외하면 1989년 이전에는 사실상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국제 비엔날레는 이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논자들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언급하는 컨템포러리의 징후다. 그리고 서울의 도시건축비엔날레는 2017년에 첫 회를 열고 올해까지 서울 전역에 걸친 전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본격적인 컨템포러리의 도래에 앞서 1980년에 처음으로 개최됐던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도, 한국은 1995년에 처음으로 참가했으며, 2014년에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렇듯 컨템포러리한 세계가 지목하는 건축의 그릇이 건축전시라면, 그 속에서 컨템포러나이어티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이는 건축전시의 내용, 형식, 수용의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로 건축전시의 내용면에서 컨템포러나이어티는 시공간의 모순적인 공존으로 드러난다. 시공은 다시 시간성과 공간성으로 나눠진다. 시간성이라 함은 상이한 모더니티의 모순적 공존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201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가 좋은 사례다. 큐레이터 배형민이 도록 서문을 통해 설명하듯 북한은 마지막 자칭 공산주의 유토피아 국가이다. 반면, 남한은 사회적 이상보다 경제발전을 강조하며 최빈국에서 세계화 경제의 강국이 된 서사를 공식화한다. 전시는 몇 가지 소주제에 맞춰 두 국가의 건축현상을 맞붙여 제시함으로써,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을 함께한 두 나라의 극단적으로 상이한 모더니티를 드러낸다. 애초 총 큐레이터 렘 쿨하스가 제시한 해당년도 비엔날레의 하부주제 중 하나가 “Absorbing Modernity: 1914-2014”였던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한편 공간성의 모순적인 공존은 세계성과 지역성의 이접으로 나타난다. 2021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UAE의 파빌리온 Wetland를 가까운 사례로 들 수 있다. Wetland “How will we live together?”라는 비엔날레의 질문에, 최상위의 국제적 주체들이 개입하는 이슈이면서도 지역적으로 고유한 영향을 드러내는 환경문제를 끌어온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대단히 특수한 지역의 자연재료로 지구적 환경이슈에 대한 해법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지역성과 세계성 양극단의 이러한 모순적 공존은, 컨템포러리 이전의 건축전시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특성이다. 지역성은 전체 내러티브 속에 편입, 복속되거나 세계성에 대한 비판으로 제안되곤 했기 때문이다.

     

    한편, 전시의 형식면에서 컨템포러나이어티는 건축이 담기는 매체의 끝없는 다변화로 드러난다. 이는 디지털 통신과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건물의 미디엄이 다변화하는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시장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건축전시의 프레젠테이션은 과거와 달리 건축도면, 건축모형, 건축사진에 국한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CCA의 전시를 변형해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 옮겨온 우리들의 행복한 삶의 풍경은 극단적이었다. “감성 자본주의 시대의 건축과 웰빙을 다룬 이 전시를 구성하는 20여개의 전시품목 중 건축도면과 건축모형은 없었다. 건축에 관한 아카이브, 건축에 관한 영상, 건축에 관한 대화, 건축에 관한 연구, 건축에 관한 에세이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이들은 대부분 데이터화되어 스크린과 헤드폰을 통해 전시장에 제시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전시가 건축전시가 아닌 미디어전시가 되는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컨템포러리 전시에서 건축은 데이터로 치환되어 매체를 순환한다. 그리고 지어진 건물을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더라도 그 모든 재현의 형식은 그 자체로 건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전시의 수용 측면에서, 컨템포러나이어티는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흐려진 이미지의 범람으로 나타난다. 컨템포러리 건축전시의 열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인스타그램 등의 이미지 중심 SNS. 건축전시의 관람자들은 전시라는 생산에 일방향적인 소비로 대응하기보다 전시에 관한 이미지를 끝없이 재생산한다. 여기에 에릭 첸의 말처럼, 시각문화 권력구조의 역전으로 큐레이토리얼 권력이 탈중심화되는 경향이 저변에 자리한다.5) 수용자가 세상의 이미지를 생산해 디지털로 유통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각문화가 다시 전시의 이미지가 된다. 이미지로 만들고 이미지로 감상하는 이미지 범람의 전시생태계인 것이다.

     

    4. 맺는 말

     

    논의를 정리해보자. 건축에서의 컨템포러나이어티는 건축에 특유한 사정으로 인해 담론적 공백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컨템포러나이어티의 속성들은 건축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이는 컨템포러리의 주요한 건축 미디엄인 건축전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전시의 내용에서 나타나는 시공간의 모순적인 공존, 형식에서 확인되는 매체의 끝없는 다변화, 그리고 수용에서 드러나는 생산과 소비가 흐려진 이미지의 범람이 바로 그것이다. 본 연구가 건축 담론에서 부족했던 컨템포러나이어티 논의를 촉발함으로써, 오늘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건축에 반영되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첫걸음으로 기능하기를 희망한다.

     

     

     

     

    각주

    1) 탈 카미너(T. Kaminer, 2011)는 모더니즘이 위기를 맞은 이후 자율적 학문(discipline)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실재(the real)로 돌아왔다는 구도를 통해 포스트모던 건축논의의 역사를 정리한 바 있다. 이때 그가 설정한 시간의 폭 역시, 1966년부터 2001년이었다.
    2) 컨템포러리가 1960년대 이후에 시작됐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논자는 신자유주의의 붕괴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2010년대 들어 컨템포러리 역시 종말을 맞았으며, 이제 포스트-컨템포러리가 시작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임근준, 2017).
    3) 여기서 참고하는 조순익의 파편화하는 현실에서 그리는 변증법적 인식의 지도는 각주 1에서 언급한 탈 카미너 저술의 한국어판(2014) 옮긴이 서문이다.
    4) “아고라: 서교 크리틱스건축(공간)” 발언 내용, 2020
    5) 현대 블루 프라이즈 디자인 2021 심포지엄” 발언 내용, 2021
     
    참고문헌

    1. Terry Smith, Currents of Contemporaneity, Architectural Theory Review, 11:2, 2006
    2. Claire Bishop, Radical Museology, Walther König, 2014
    3. 임근준, X: 1990년대 한국미술 - 동시대성 혹은 당대성이 죽으면 무엇이 남는가?, 월간미술 2017 1월호, 2017
    4. 김기수, ‘1989년 이후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동시대성의 문제, 현대미술학 논문집 21(1), 2017
    5. Tal Kaminer, Architecture, Crisis and Resuscitation, Routledge, 2011
    6. 이경창, 현대 영미 건축계의 비판/-비판 논쟁 연구, 대한건축학회문집 계획계 291, 2013
    7. 조순익, 「파편화하는 현실에서 그리는 변증법적 인식의 지도」, 『현대성의 위기와 건축의 파노라마』,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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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Hyungmin Pai, Curatorial Confessions of a Crow, 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 Archilif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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